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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족례, "내가 이방인 노예로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듯이"[예수의 마지막 일주일-5-1강 : 목요일, 마지막 만찬]

성 목요일은 극적인 사건으로 가득찬 날이다. 성전입성과 성전정화에 이어 성전세력과 논쟁을 벌이고 하루 쉬신 다음날, 결국 예수의 삶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날 예수는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식사를 나누고, 겟세마니에서 기도를 마치신 다음에 성전세력이 보낸 성전경비대에게 연행 당했으며, 대사제의 저택에서 밤새 첫 번째 심문을 받았다.

다락방, 마지막 식사 자리

공관복음에서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마르 14,22)라는 말이 등장하는 예수의 마지막 식사는 ‘성만찬’의 핵심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그 대신에 ‘세족례’가 등장한다. 이 자리에서 예수는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라는 새 계명을 준다.

요한복음은 성목요일이 파스카(유월절) 전날이라 하고, 마르코복음 등 공관복음은 파스카 첫날이라고 전한 그날 저녁에 만찬이 이루어졌다. 만일 이게 유월절 식사였다면 마땅히 있어야 할 양고기가 없고, 관례에 따라 예루살렘에 예수 일행이 그날 밤 머물지 않고 식사 후 성 밖 올리브산으로 갔다는 점에서 요한이 정한 파스카 전날일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니라면 예수가 제정한 성만찬은 ‘희생제물’을 원하지 않았던 예수의 파격적 행보처럼, 또 초대교회의 관행처럼 항시 일상적으로 나눌 수 있는 새로운 파스카 식사로 보아야 한다.

예수는 ‘은밀히’ 열두 제자 모르게 익명의 다른 두 제자를 성안으로 들여보내 만찬 장소를 구해놓았다. 이 제자들은 예수의 지시에 따라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와 접선하여 예루살렘 상부도시의 어느 이층방(다락방)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준비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그 장소를 미리 알 수 없었고, 아직 성전세력에게 연통할 기회도 없었다. 이 다락방은 20여 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공간으로 만찬에는 열두 제자뿐 아니라 여성들을 포함한 다른 제자들도 참여했을 것이다. 현재 그 다락방으로 알려져 있는 곳은 이 주변에서 1세기 회당이라 불릴만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기독교 문양의 파편들이 출토된 이 회당터는 성전산을 향해 있는 전통적인 유대교 회당과 달리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고 묻혔다는 ‘성묘교회’를 향하고 있다.

Greatest in the Kingdom by I. J. Kirk Richards

가장 낮은 자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

마지막 만찬에 앞서 예수는 다락방에서 ‘세족례’를 행한 것으로 요한복음서에서는 기록하고 있는데,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오는 길목에서 줄곧 지도력과 지위 다툼을 벌였던 점을 기억할 때, 예수의 제자들 발씻김은 ‘하느님 나라의 지도력’과 관련해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7)는 입장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당시 유대의 도시들은 매우 불결했다. 길을 걸으면 오물과 먼지, 배설물과 쓰레기, 타고 남은 재와 썩은 음식물을 비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발을 씻는 것은 위생의 문제였으며, 정결규정과도 상관이 있었다. 더구나 성전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자기 발을 씻어야 하며, 최소한 손을 씻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유대의 자유민 남자들은 누구도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지 않았다. 이런 천한 역할은 노예들이나 아내와 자녀들의 몫이었다. 로마제국에는 수백만 명의 노예들이 있었는데, 주로 슬라브족(slavs)이어서, 여기서 노예를 뜻하는 ‘슬레이브’(slave)라는 말이 나왔다. 예루살렘의 노예들은 주로 시리아 노예였는데, 이들은 평생 노예살이에서 풀려나올 수 없었으며, 이들이 주인이나 손님의 발을 씻어주었다. 그러나 유대인 출신의 노예들에게 발을 씻기는 일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발을 씻는 것은 ‘이방인’ 노예나 하는 부정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경우에, 도둑질을 했다가 정해진 보상을 해줄 능력이 없거나, 지나치게 빚을 많이 지었으나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노예로 팔려갔다. 유대인 소녀들은 12살 이하라면 노예를 팔릴 수 있었다. 대개 주인과 결혼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방인 노예들이 100므나(5000세겔, 5억) 이상에 팔린 데 비해 이들은 5-10므나에 팔렸다. 그 이유는 유대인 노예들의 경우에 6년 이상 부릴 수 없으며, 소유물을 가질 수 있는 등 비교적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려 했을 때 베드로를 손사래를 친 것은 당연하다. 예수가 이방인 노예처럼 처신했기 때문이다. 이런 예수의 모범이 있었기 때문에 초기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천대받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바오로 사도가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8)라고 말한 것은 상당히 급진적인 견해였다. 로마제국의 누구도 이런 진술에 동의할 수 없었다.

마지막 만찬, 세상을 위한 빵 나눔

이어진 마지막 식사에 대한 기록은 복음서가 아니라 AD 54-55년경 바울이 코린토 교회에 보낸 편지에 처음 나온다.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 11,23-26)

이 마지막 식사는 초대교회에서 행하던 전승이었다. 교회는 예수의 마지막 식사의 상징성을 가져다 ‘성찬례’(Eucharist, ‘감사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로 삼았다. 여기서 빵과 포도주는 ‘일상성’의 표현이다. 그리스-로마세계에서 동네 어딜 가든 밀을 빻는 맷돌소리와 빵 굽는 냄새가 풍겼다. 심지어 예수가 태어났다는 베들레헴은 ‘빵집’이란 뜻이다. 산등성이엔 어김없이 포도밭이 있었다. 예수는 언제 어디서나 공동식사를 즐겼다.

특히 예수가 제자들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 배제와 차별에 시달리는 이들과 더불어 먹기를 즐겼기 때문에 율법학자들에게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마르 6,16)라는 핀잔을 듣곤 했다. 이때 그가 사람들과 나눈 식사는 성찬례에서 나누는 성체와 성혈처럼 상징적인 의례가 아니라 실제적 식사였다. 예수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나 ‘빵’은 언제나 중요했는데, <주님의 기도>에서조차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기도에 이어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라고 청한다.(마태 6,9-13; 루카 11,2-4 참조) 당시 농민들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는 ‘빵’과 ‘빚’였다.

마지막 만찬은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사람들은 광야에서 하루종일 예수의 말씀을 들었는데, 해가 저물자 배가 고팠다. 제자들이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자”고 제안하자, 예수는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신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먹을 만한 것을 찾도록 하고, 사람들을 무리지어 앉게 한 뒤에, 음식을 나눠주고, 먹은 것을 줍게 한다. 결국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시작된 식사는 모두에게 부족함이 없었다.

예수는 결코 만나(manna)를 내리게 하거나 돌로 빵을 만들지 않는다. 이미 갖고 있던 것을 나누었으나 모두가 배불리 먹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요점은 기적처럼 빵이 많아졌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눠 먹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그들의 빵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는 것도 확인시켜 주었다.

초기교회의 부제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을 분배해 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사제들에게도 ‘부의 재분배’, 곧 사회적 정의의 실현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제는 미사나 기도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영적 성장뿐 아니라 평등한 식사를 구현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미리 앞당겨 사는 게 교회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Soest, Conrad von. Niederwildungen. altar. R.wing. Last supper

인간의 불의를 거부하는 유월절 식사

한편 유월절 어간에 이루어진 예수의 마지막 만찬은 실상 탈출기의 ‘유월절’(파스카)을 곧바로 상기시킨다. 첫 번째 유월절(탈출 12장)은 모든 맏배의 죽음이라는 야훼의 말씀이 파라오와 이집트를 강타하기 전날 밤에 이루어졌다. 이날 밤에 히브리 노예들은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고,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불에 구운 고기를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이를 파스카 축제라 불렀다.

이 유월절 식사는 이집트에서 노예해방의 대장정에 나서는 히브리 노예들이 먹은 ‘마지막 만찬’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마지막 만찬은 “죽음을 통해 부활로 건너가는” 하느님 나라를 향한 대장정에 나선 그리스도인들의 ‘유월절 식사’였다.

예수의 제자들은 ‘마지막 만찬’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열망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길을 떠나기에 앞서 예수는 ‘기억’을 강조한다. 루카복음은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22,19)고 하였으며, 어떤 복음서보다 더 먼저 기록된 바울의 서간은 서로 나누어 먹어야 할 식사를 몇몇이 모여 독식하는 관행을 지적하며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말을 반복한다. 덧붙여 이렇게 당부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1코린 11,26-27 참조)

결국 예수의 마지막 식사의 요점은 “음식을 함께 나누라”는 것이다. 모든 땅은 하느님의 소유이니, 그 땅에서 얻는 음식도 하느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음식을 혼자 독식하는 것은 그 음식이 하느님의 소유임을 거부하는 것이며, 곧 ‘불의’이다.

한편 예수는 마지막 식사에서 ‘빵’과 ‘포도주’를 따로 축성하시고 나누어 주었는데, 이는 예수가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전갈이다. 자연적으로 죽으면 흔히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다”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이 폭력에 의해 죽으면 “몸과 피가 분리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일주일>의 저자들은 예수가 빵과 포도주를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 데 주목한다.

제자들은 실제로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심으로써, 예수의 죽음에 참여한다. 이것은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으로 이끌고자 하는 예수의 마지막 시도였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이 잔을 들겠느냐?” “내가 받을 세례를 너희도 받겠느냐?”고 물을 때, 이는 곧 수난과 죽음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건너가자는 초대였다.

“마지막 만찬에서 중요한 것은 세상을 위한 빵이며, 인간의 불의를 거부하는 하느님의 정의이며, 속박으로부터 자유에 이르는 새로운 유월절이며,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그 길에 참여하는 것이다.”(마지막 일주일 211쪽)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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