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cking on Heaven’s d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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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cking on Heaven’s door
  • 김유철
  • 승인 2016.04.2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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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en's door
"다시 한 번 <사목헌장>에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왕년’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일이다. 그러니 그대여, 하늘의 문을 두드려라." 사진/한상봉

[김유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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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이제는 전설처럼, 어쩌면 꼰대들이 잘 쓰는 말처럼 “왕년에”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에 그런 것이 있었다. 아니 있었다고 전설처럼 전해진다. 16개의 문헌 중 ‘꽃’이라 불렀던 <사목헌장>의 시작.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이며 슬픔과 번뇌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4.16 세월호 2주기를 맞아 한국천주교회 각 교구에서 추모미사가 있었다. 4월 6일 의정부교구를 시작으로 4월 18일 춘천교구까지 16개 교구 중(한국교회는 19개 교구지만 3개 교구는 북쪽에 있다.) 12개 교구가 비극적 슬픔을 추모하는 미사를 드렸다. 교구미사를 하지 않은 4개 교구도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유가족의 아픔을 나름의 방식으로 나눴으리라 여기고 싶다. 문제는 세월호 참사 비극에 대한 2주기 미사가 시국미사인지, 추모미사인지, 위령미사인지 구분하는 생각들이다.

그 미사의 성격을 구분하자 또는 구분하지 말자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논어 자한9장에 ‘애유상(哀有喪)’이라는 말이 나온다. “초상을 맞아 깊이 슬퍼하는 것”이 성인의 태도라 했다. 다산 정약용은 이를 일컬어 한마디로 ‘경(敬)’이라 말했다. 그것은 논어와 유교의 예법이 아니라 인간사 근본을 말하는 것이다. 해서 하는 말이다. 혹시나 슬픔 없는 세월호 미사는 아니었는지? 말하고 싶은 표현은 아니지만 연말에 밀린 ‘관급 공사’하듯 2주기 미사를 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보면 어떨까 자문해본다. 보고 듣는 것이 있어서 되묻는 말이다. 다시 한 번 <사목헌장>에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왕년’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일이다. 그러니 그대여, 하늘의 문을 두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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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없이 ‘자발적’, 성직자 없이 ‘평신도’> 불조심이나 반공표어 스타일이지만 “한국천주교회의 특징은?” 이라고 물으면 웬만한 신자에게서 나오는 대답의 요점이 그러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혹은 반걸음만 들어가면 늪지대다.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들여와서 지금 한국천주교회가 어떻다는 것인지, 평신도로 시작한 한국천주교회가 왜 성직자중심주의에 있는지를 물으면-사실 물어 볼 곳도 별로 없지만-그저 꿀 먹은 벙어리거나 풀 수 없는 퍼즐을 받은 아이들 표정이다.

심지어는 평신도 중 한국천주교회를 누가 세웠을까? 라는, 어쩌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단체의 창립자를 물어보기라도 하면 태반이 옆 사람 얼굴 쳐다보기 십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옆 사람’이 한국교회를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기는 고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대답 안 나오면 대형사고는 면했다고 해야 할까. 한국천주교회 대다수(?) 평신도는 유아영세자라면 주일학교를 다닌 이후 더 이상 진학(!)하지 않는다. 성인이 된 후 영세를 받은 신자는 교리반 수료 이후 더 이상 진학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는 학벌스펙에 목을 내걸고 달려들지만 이른바 교회공부는 그저 담쌓고 산다. 교회 안에서는 평생 ‘선데이 스쿨’ 졸업 혹은 중퇴이거나 어쩌면 무학자 수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이 평신도의 실상이라면 너무 비하하는 것일까?

교종 프란치스코는 2013년 취임이후 첫 사목적 권고인 <복음의 기쁨> 이후 2016년 <사랑의 기쁨>에 이르기까지 싸고(!) 좋은 양질의 책을 거의 매년 발간하고 있지만 과연 그것을 ‘조중동’ 신문만큼 천주교신자들이 열독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물며 2005년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가 발간한 <간추린 사회교리>까지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주경야독이 천주교회 용어는 아니지만 한국인의 오래된 미덕이다. “자진 진학하고 공부해서 남 주자” 그것 역시 하늘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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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천개의 바람>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한 잡지사에서 인터뷰 연락이 왔다. “학생운동 출신이죠?” “노동운동하다 잡혀갔죠?” 기자는 몇 가지를 사전에 단단히 준비해 온 듯 질문을 늘어놓았지만 시인은 긴 침묵만 이어갈 뿐

사람들과 상관없이, 교회의 정신은 낡고 누추하다, 여전히. 천국의 문은 누가 두드릴 것인지. 사진/한상봉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는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다 엉뚱한 대목에서 선언하듯이 시인은 말했다. “먼 섬으로 갈 겁니다.” 시인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이해하려고 기자가 애쓰는 사이 말이 이어졌다.

“먼 섬에서 가서 주막 비슷한 것을 하고 싶어요. 간판은 ‘Knocking on Heaven's door’라고 할 거예요. 제주도에 구체적으로 준비했었는데 제주도가 너무 복잡해졌어요. 그래서 준비를 하다가 놨어요. 더 조용하고 먼 곳으로 갔으면 해요. 가능하면 전라도 쪽으로요. 아직도 전라도라고하면 무턱대고 욕을 하는 오랜 친구들을 위해 ‘그래, 나는 적진 깊숙한 곳으로 간다. 나는 이제 전라도사람이다’라고 얘기해 주려고 해요”

기자는 시인의 선언에 여전히 의아해했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혼자 오르는 계단이겠지요. 시인의 주막에 오는 사람은 두 사람이 오던지, 세 사람이 같이 오던지 모두 바닷가로 향해 있는 1인 의자에 앉게 될 겁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둔 2인석, 4인석은 주막에 없습니다. 메뉴는 오로지 보드카와 감자와 취나물 비빔밥만 있습니다.” 그곳에서 나올 실내음악에 대해서는 기자가 감을 잡았는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시인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함께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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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번, 시인의 글 주막 <Heaven's door>에서 우리는 만날 것이다. 이곳의 술과 밥으로 교회의 세속화를 엿볼 것이다. 담론이 아닌 잡설 속에서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리얼하게 길벗들과 나눌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리얼은 있는 현실이 아니라, 있어야 할 현실”이다. 우리 사는 곳이 먼 섬과 그리 다르지 않고, 우리가 머무는 곳이 주막의 1인석과 다를 바 없다. 자, 하늘의 문을 두드리자. 힘껏. 물론 혼자. ‘개봉’하고 ‘박두’다.
 

김유철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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