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공부하며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실패한 남성제자들 "첫번째 신앙인은 여성이었다"[예수의 마지막 일주일-4강 : 수요일, 향유 부은 여인]

성전 입성 이후 성전폐쇄 퍼포먼스, 성전세력과의 논쟁이 이어지면서, 예수는 성전세력의 분명한 공격 타깃이 되었다. 수요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예수를 붙잡아 죽일까” 궁리하였다. 그들은 가급적 축제기간은 피하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예수를 연행하다가 자칫 “백성이 소동을 일으킬”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통상 우리는 예수의 마지막 심문 과정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군중 때문에, 성전입성 때와 달리 점차 예수에게서 민심이 돌아섰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회당 중심의 랍비유대교와 갈등을 빚었던 마태오복음 등 후기 복음사가들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사실과 다를 공산이 크다.

실제로 대부분의 군중들은 예수를 세례자 요한만큼 존경하고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와 요한은 ‘예언자들’을 상기시켰으며, 그들의 갈망을 더 적실하게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전세력은 예수를 밝은 대낮에 체포하지 않고 밤중에 기습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도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거사를 끝내기를 희망했다. 예수는 늘 낮에 성전 안에서 가르쳤지만 아무도 예수를 가로 막지 못했으며, 예수 역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다가 어스름이면 성전세력의 통제가 마치지 않는 성전 밖으로 나가서 은신했다.…

사실상 성전세력이 두려워한 것은 예수의 발언이 아니라, 예수에게 열광하는 ‘군중’이었다.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마르 12,37) 역사가 요세푸스도 예수에 대한 군중의 지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예수는) 많은 유대인들과 많은 그리스인들을 설득하여 지지자로 만들었다. 그가 우리 가운데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고발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빌라도가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선고했을 때 최초로 그를 사랑하게 되었던 사람들은 그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전세력은 사실상 군중이 방해할 수 없는 적절한 때에 은밀하게 예수의 거처를 일러줄 ‘배신자’가 필요했다. 그 사람이 유다 이스카리웃이었다.

by Giotto de Bondone

예수를 배신한 유다 이스카리웃

마태오복음에서는 유다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마태 26,15)라고 물었고, 이들은 유다에게 은전 서른 닢을 주었다고 전한다. 그가 받은 돈은 30세겔인데, 60데나리온, 곧 하층 노동자의 30일치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마르코는 유다가 돈 때문에 예수를 배신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유다가 청하기 전에 알아서 돈을 먼저 건넨 것은 성전세력이었다.

그럼에도 <가장 길었던 한 주일>에서 닉 페이지는 다른 의미에서 유다가 단순히 돈 문제로 배신했을 가능성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수요일 저녁에 한 여인 옥합을 깨고 향유를 예수에게 부어주는 광경을 지켜보고서 유다는 수석사제를 찾아갔다. 그 나르드 향유는 300데나리온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금액이면 보통 노동자 열 달치 임금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이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들먹이며 항의했는데, 유다 자신 역시 누구보다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와서 부유한 이들을 바라보며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 예수를 따라 다녀 봤지만 어떤 보상도 없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 10,29-30)라고 말했다. 그런데 (물론 내세라는 단서가 붙어 있긴 했지만) 보상은커녕 눈앞에서 부유함의 상징인 향유가 스승의 발치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장면을 보면서 어떤 심정이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다.

한편 유난히 유다에 대한 거부감을 가졌던 요한복음에서는 아예 유다를 예수를 팔아넘길 “악마”(요한 6,70)라고 단정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도 마르코복음처럼 ‘향유를 부은 여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자로의 집에 머무실 때 마리아가 나르드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는 것이다. 이때 유다가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따져 물었는데, 요한은 이를 두고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상상력을 발동해서 유다가 예수의 비폭력 투쟁을 어리석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르코복음에서는 유다의 배신 동기에 관심이 없다. 마르코복음은 유다를 언급할 때마다 항상 그가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유다의 배신은 예수를 가장 가까이 따르던 제자들 가운데서 최악의 사례에 불과하다.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는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지만, 유다뿐 아니라 이 말을 진지하게 제대로 알아들었던 제자는 아무도 없었다.

예수의 수난예고, 제자들의 실패

1. 메시아의 수난 반대하는 베드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8장)

생전에 제자들은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수많은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지만,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는 ‘다윗왕국’이 상징하는 그런 나라였다. 예수가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해 가다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묻자 베드로는 당장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는 제자들에게 베드로의 답변이 옳다 그르다 하지도, 칭찬을 한 마디도 없이 그저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령했다.(마르 8,27-30 참조) <마지막 일주일>의 저자들은 이 말을 “네가 잘못 알고 있으니 조용히 하라” “제발 입을 닫고 있어라”는 뜻으로 새긴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예수가 무력을 사용해 이스라엘을 로마의 억압에서 해방시킬 군사적인 구원자로 여전히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고, 예수는 그런 생각이 잘못임을 알려준 것이다. 이런 예수의 의도는 곧바로 이어지는 수난예고에 나타난다.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마르 8,31)

이런 메시아를 기대하지 않았던 베드로가 곧바로 예수를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32) 그러자 예수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었다.

2. 우열경쟁을 벌이는 제자들, “첫째가 꼴찌 되고...”(9장)

예수가 갈릴래아의 가파르나움으로 가는 도중에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며 두 번째 수난예고를 하셨다.

이 와중에도 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문제로 다투었고, 예수에게서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훈계를 들어야 했다. 여기에 따라붙는 이야기가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는 말이다.(마르 9,32)

3. 자리다툼을 하는 제자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10장)

제자들의 다툼은 예루살렘에 거의 와서도 멈추지 않았다. 예수는 한 번 더 수난 예고를 하신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나서 죽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마르 10, 33-34)

이 마당에도 염치없이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달라”고 청한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왕좌에 오를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는 당신이 마실 잔과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묻는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수난’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여전히 알지 못했다. 이 두 제자의 청원 때문에 제자들 사이에 갈등도 발생했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마르 10,41)고 기록되어 있다.

이어 예수가 한 말은 제자들의 생각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분은 섬김을 받으러 온 왕이 아니고, 종당에 노예처럼 살해당할 것이라는 예고까지 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가 아니었던 것이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10,42-45)

그들은 예수의 죽음을 간단히 무시하고 자신들이 예수의 영광에 참여할 것에만 온통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은 여전히 주인처럼, 통치자처럼, 이방의 전제군주처럼 행세하고 싶어 하지만, 그래서 예수가 연거푸 자신을 따르는 길은 어린아이와 하인과 노예가 되는 길이라고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답답하고 어리석은 제자들이었다.

by Pieter Pauwel Rubens

예수를 이해한 단 한 사람, 향유를 부은 여인

마르코복음에 따르면, 수요일에는 예수가 심상치 않은 성전 분위기를 감지하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면 이 날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고, 다만 베타니아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저녁식사 약속이 잡혀 있었다.

예수가 나병환자의 집에서 밥을 먹었다는 말처럼 놀라운 일은 없다. 유대에서 나병이란 피부발진, 상처, 외관손상 등을 포괄하는 흉터가 남는 유전적 피부질환을 가리키는 용어였는데, 이 질병에 걸리면 공동체에서 추방되었다. 유대인들은 나병환자를 만져도 부정을 타고, 이들과 같은 지붕 아래 머물기만 해도 부정을 탄다고 믿었다.

집안에 그들의 신체 일부만 들여도 부정을 타는 마당에 나병환자의 집에서 예수가 음식을 먹었다는 것은 정결례를 전면적으로 거부하셨다는 뜻이다. 꿈란에서 발견된 문서에는 예루살렘 동쪽에 사는 나병환자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아마도 동예루살렘에 있는 베타니아 인근에 나병환자촌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예수는 어느 누구와도 식사를 즐기신 분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마태 11,19)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누군가와 식탁을 나눈다는 것은 상대를 받아들인다는 뜻이고, 서로 막역한 사이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결국 ‘나병환자의 친구’는 ‘죄인들의 친구’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한 여인이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은” 사건이다.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 여인을 불쾌한 표정을 보이며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터인데”하고 비난했다. 하지만 예수는 이 여인을 ‘적극’ 변호하신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라도 너희 곁에 있지만, 이 여인은 영원히 기념될만한 일을 했다고 그 행위를 옹호하고 나섰다.

비슷한 이야기가 루카복음에도 나오는데, 예수 공생활 초기에 시몬이라는 바리사이의 집에서 ‘어느 죄 많은 여인이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눈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렸다’는 이야기다.(루카 7,36-50) 이는 마르코복음에 등장하는 여인과 전혀 다른 여인이며, ‘용서’를 주제로 한 이야기였다. 이날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루카 44-47)

요한복음(12,1-8)에서는 나사로의 집에서 누이인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드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학자들은 요한복음사가가 마르코복음 이야기와 루카복음의 이야기 등을 뒤섞어서 창작한 것으로 설명한다.

당시 예수 주변에는 미혼여성들이 도드라졌다. 마리아 막달레나, 베타니아의 마리아와 마르타, 수산나(루카 8,2-3) 등이다. 당시 유대에서 여성은 ‘2등 시민’이었다. 유대의 외경 <벤 시라>는 “아비의 훈계를 받지 않는 아들은 수치이며, 딸을 낳는 것은 손실이다”라고 전한다. 여성들은 올리브를 팔거나 직물을 짜기도 했지만, 대부분 집에서만 생활했다. 남자들이 정결 규정을 지키느라 시간을 보내고, 논쟁하고 배우고 토론하는 동안, 여성들은 그 틈에서 요리를 해야 하였다. 여인들은 제한된 권리밖에 없어서 남자의 부정이 아니면 이혼을 청구할 수도 없었다.

남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여인이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스캔들이었다. 하느님조차 여성에게는 말을 걸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랍비 엘리에제르 시므온은 전능자가 사라를 제외하고는 어떤 여성에게도 말을 건네신 증거를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여성은 큰 유혹거리였고, 특히 머리카락은 성적 자극을 유발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여성이 집 밖에 나갈 때 머리카락을 가리지 않는 것은 가슴골을 내비치는 것처럼 논란거리가 되었다.

마르코복음에서는 여인이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어주었다는 보도를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지정된 역할의 경계를 넘어서 예수에게로 다가왔다. 그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향기가 온 방안에 퍼졌을 때, 그 향유는 침묵을 강요당해 온 여인이 그리스도를 향해 보여준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그러니 남자들이 이 여인을 크게 책망했을 텐데, 예수는 오히려 이 여인을 칭찬했다.

예수가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르 14,8-9)라고 말할 것을 두고, <마지막 일주일>에서는 “예수가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해 세 차례나 예언했던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 가운데 그녀만이 예수의 말을 믿어 분명한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제자들은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여인만이 예수를 이해했다. 그래서 “그녀는 (제자들을 넘어서)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녀는 예수가 어린이와 하인과 종을 모델로 해서 보여준 역설적인 리더십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가톨릭일꾼 기사는 상업적 용도 아니라면 출처를 밝히고 누구나 퍼갈 수 있음>

한상봉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