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흥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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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흥정하지 않는다
  • 한상봉
  • 승인 2017.02.2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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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침과 사랑>, 앤소니 드 멜로, 분도출판사, 2016
사진출처=pixabay.com

사랑 없는 삶이란 생명력 없는 삶이다. 잠들어 있는 삶이다. 앤소니 드 멜로가 뉴욕에 있는 예수회대학인 포덤대학교에서 행한 피정 강연을 엮은 책이 <깨침과 사랑>(2016)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원제가 <Rediscovering Life>(2012)이니 “삶의 재발견”이라 해야 하는데, 요지는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잠든 삶의 실재를 일깨우는 방법이 뭘까?” 묻고 답하는 과정이다.

강연 앞머리에서 드 멜로는 어느 가톨릭 사제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사제관에서 신문을 읽고 있던 그 신부는 갑작스런 방문객이 달갑지 않았다. “무슨 일이죠?” “신부님, 왜 관절염에 걸리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 한 마디에, 귀찮았던 신부는 다그치듯 답변을 쏟아낸다. “음주가 관절염을 일으킵니다. 행실이 나쁜 여인네들과 놀아나면 관절염에 걸려요. 도박도 관절염을 일으키지요.” 답을 마치고 난 다음 “근데 왜 묻소?” 하자, 방문객이 이렇게 말했다. “신문에서 보았는데, 교황님이 관절염에 걸리셨다고 해서요.”

타인에 대한 존중심 없이 허투루 남의 말을 듣는 버릇이 불러온 낭패였다. 드 멜로의 책은 사실상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러나 실상 많은 이들은 그 답을 굳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건강과 명성과 재산이 행복을 보장해 준다는 확신을 이미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저렴한 생각에 대해 드 멜로는 “아니”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그것은 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입시킨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는 게 드 멜로의 판단이다. 이런 것들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이 집착을 버려야 우리는 정말 사랑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남의 눈치 보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Anthony de Mello

드 멜로의 조언은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가 지은 <미움 받을 용기>(2013)라는 책에서 받은 인상과 유사하다. ‘개인심리학’을 제안한 알프레드 아들러를 소개하는 이 책에서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면 먼저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욕구를 과감히 포기하라고 말한다. 남의 이목에 신경 쓰느라 현재 자신의 행복을 놓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잘 보이려고 애써도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아무도 내 얼굴을 나만큼 오래 들여다보지 않을 테니, 바보처럼, 얼간이처럼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기대에 맞추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럼 어떻게? 드 멜로는 인도의 탁발승 사냐시 이야기를 전한다. 어느날 마을 떠나려던 한 사람이 아침녘에 사냐시를 찾아왔다. 지난밤에 꿈을 꾸었는데, 비슈누 신이 말하기를, 아침에 만난 탁발승이 귀중한 돌을 줄 텐데, 그러면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일러주더란다. 그 돌을 줄 수 있냐고 하자, 사냐시는 바랑을 뒤져 돌을 꺼내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였다. 그걸 받아들고 마을 변두리 나무 아래 앉아서 그 사람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다이아몬드를 손에 쥐었으니 그 기쁨이야 말할 수 없이 컸지만 그 기쁨이 얼마나 갈까 염려했다. 저녁에 다시 사냐시를 찾아간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다이아몬드를 그토록 쉽게 거저 줄 수 있게 만든 그 부유함을 저에게 주실 수 있나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사람은 드 멜로의 말마따나 천 명 중 하나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진짜 행복을 찾는다. 그 비법을 아들러는 “선글라스를 벗어라”고 조언한다. 선글라스 너머로 세상을 보지 않으면 빛이 너무 강렬해서 눈이 부시겠지만, 세상을 정면으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바라볼 수 있다. 그때 세상은 바로 보인다.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간 셈이다.

행복을 가로막는 '의존적 사랑'

드 멜로는 이미 프로그램밍 된 행복에 대한 ‘거짓믿음’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거짓믿음은 사랑할 수 없게 하고, 사랑할 수 없으면 행복은 없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거짓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를 사랑할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위해 당신을 원한다. 나는 당신 없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감정적으로 당신에게 의존한다. 나는 당신 없이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번뇌가 시작된다.

사랑받을 걸 기대하지 않고 “사랑하는 일”이 나를 행복으로 이끈다. “나에게 잘 해 주어서” “잘 생겨서” “부자라서” 사랑하는 기대하는 사랑은 흥정이지 사랑이 아니다. 이런 사랑은 시장이나 금융가에서 찾아야 한다. 결국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여러분은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업가가 이윤에 미칠 때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에게는 유권자가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원하고 인정받기를 원할 때, 이런 의존적인 사랑은 진짜 사랑을 가로 막는다. 이런 사람에 대한 필요와 의존이 사라질 때 사랑이 시작된다.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을 매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을 조종할 필요가 없어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없어요. 사람들을 달랠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여러분은 사랑할 수 있어요. 생애 처음으로 여러분은 외로울 수 없습니다.”

소유하지 않는 사랑, 끝없는 기쁨

드 멜로는 외로움이란, 사람들이 없으면 불행하다고 느낄 정도로 절망적으로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상태라고 말한다. 그런데 외로움은 인간적 동행으로 치유되지 않고, 오로지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 곧 실재와 접촉함으로써 치유된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우에게도 굴이 있고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예수처럼 우리는 머리 둘 곳이 필요하지 않다. 더 이상 세상에 매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사랑이 시작된다. 하느님과 우리가 흥정할 수 없듯이, 사랑은 흥정하지 않는다. 이런 사심없는 사랑이 인간을 행복으로 이끈다. 드 멜로가 전하는 ‘소유하지 않는 사랑’은 그래서 끝없이 기쁨을 안겨준다.
 

(기사출처_기독교사상 2월호)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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