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매일의 취약함을 보여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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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매일의 취약함을 보여준 여성
  • 로살리 뤼글
  • 승인 2017.02.20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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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가 다양한 사람들과 맺은 관계를 보면 “친구” 이상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관계들은 더 복잡하고 더 개인적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그를 어머니로 보았다. 왜냐하면 일꾼운동의 시작에 보면, 도로시는 일꾼에 와서 함께 일한 젊은이들보다 더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매리 래트롭은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는 진짜 나의 엄마였다. 아마 심리학자가 보면 그 관계를 일종의 굴레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매리는 도로시의 말년에 음식을 날랐던 충실한 딸의 역할을 했다. 매리는 기억한다, “어느 날 도로시가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은 당신의 늙은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네요.’”

어떤 남자들과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정해진 역할로 이루어졌다. 마이클 해링톤은 도로시가 그의 정중한 태도를 좋아했다고 기억한다. 가톨릭일꾼신문의 편집자였던 톰 코넬은 때때로 긴장이 가득한 체험을 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말한다,

❧ 그건 참으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같은 체험이었다. 도로시는 매우 정숙했다. 그는 신학생이나 젊은 신부가 나타날 때 잠옷차림으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바보같은 사람들이 아파트로 잠옷을 입고 있는 도로시를 만나러 갑자기 신부들을 데려가는 일이 있었는데, 그는 무척 당황해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잠옷차림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Dorothy Day by Sally K. Green

결혼한 여성들보다 독신여성들이 도로시와 더 잘 어울렸다

많은 남자들이 주로 신문에 관해서 도로시와 논쟁을 했다는 얘기를 하는데, 니나 폴린무어는 도로시와 “아무런 말다툼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아마도 남자들은 여자가 우두머리 노릇 하는 것에 경쟁심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한다. 밀워키의 성가정 환대의 집을 하고 있던 래리 히니와 결혼했던 루스 앤 보일스톤은 결혼한 여성들보다 독신여성들이 도로시와 더 잘 어울렸다고 말한다:

❧ 나는 도로시가 내 결혼 생활에 간섭한다고 보았고 그래서 그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우리가 이스톤의 농장에 살고 있을 때 남편에게 이것저것을 하라고 도로시가 말했고, 남편은 나와 의논할 기회가 없었다. 남편도 이런 상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나이가 더 들어가고 지도력도 더 안정되어가면서, 도로시가 부부들과 맺은 관계도 더 가까워졌다. 나는 팻과 캐트린 죠르단 부부와 인터뷰를 했는데, 캐트린은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 우리는 스테이튼 아일랜드에서 도로시와 함께 지내는 행운을 얻었다. 나는 아이 하나와 또다른 아이를 임신하고 이 나이든 여성과 해안가에서 매일매일 시간을 함께 보냈다. 우리는 도로시가 너무 그립다. 우리가 결혼하고 일꾼을 떠나려고 했을 때가 기억난다.

우리는 그때 도로시에게 매우 가까웠고 그래서 떠나는 것이 힘들었다. 한 번은 도로시가 간접적으로 우리가 그냥 있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선 즉시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는데 마치 나에게 쓰러지는 것 같은 자세였다. 나는 그의 등 뒤를 어루만졌으나 도로시는 재빨리 몸을 세우며 말했다, “나를 동정하지 말아요.” 난 도로시가 이 말을 마치 자기 자신에게 하고 있다고 느꼈으나, 확실히 나에게도 한 말이었다. 그래서 떠나기가 무척 어려웠다.

도 아내 말에 합류한다:

❧ 나는 도로시 데이와 가톨릭일꾼을 통하여 나의 삶을 얻었다. 나의 삶을 찾은 것이다. 우리는 매우 자주 그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 아들 져스틴은 밑에 내려가 낚시하고 장어잡기를 좋아한다. 알다시피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왔고, 그곳에는 아름다운 해안들이 많다. 그러나 이곳 뉴욕,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왔을 때 난 꽤 실망했다. 왜냐하면 해안에 바위가 많았고, 고향 해안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곳 해안가에서 처음 본 것은 낡은 타이어였고, 누가 쓰다가 그곳에 버린 냉장고 같은 것들이었다. 도로시는 나에게 이 해안가에서 아름다움을,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이 모든 선물들 … 아, 이건 분명히 우리 가족이 받은 선물이다. 우리 가족은 서로 다른 곳에서 왔고 가톨릭 일꾼에서 만났다. 이제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알게 되었다. 도로시와 가톨릭 일꾼 덕분에 우리 가족의 삶에 이런 좋은 일들이 생긴 것이다.

도로시가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죠한나 휴 터너는 아이때부터 도로시를 알았고 다음과 같이 특별한 생각을 들려준다:

❧ 나는 어렸을 때 나와 다른 아이들에게 도로시가 몸이 따뜻하고 늘 함께 있어 주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는 많은 포옹과 키스와 목소리에 사랑을 담은 사람이었다. 도로시는 매우 강한 사람이고 가톨릭 일꾼의 창립자요 대표였다. 그러나 그는 또한 연약한, 참으로 연약한 측면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이것을 어려서부터 깨달았다.

도로시는 쉽게 감정이 상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눈물을 머금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그때 그 모습은 강하고 영향력이 크고 강한 의지의 사람이 지닌 매일 매일의 취약함을 젊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번은 스테이튼 아일랜드의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도로시가 흥분해서 들어왔다. 그는 성인들과 기적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고 깊은 감명과 영감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빠와 나는 서로 눈길과 웃음을 주고받으며 눈동자를 굴렸고, 도로시는 이런 모습들을 보며 울면서 나가버렸다. 우리는 금방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그런 장난을 하는데 익숙해 있어서 어른이 그렇게 성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도로시는 우리 모두의 삶에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보호자였다. 관계가 깨지거나, 다쳤을 때, 혹은 쉬고 싶을 때 또는 정신 병원에 있다 나왔을 때 사람들은 치유받기 위해 가톨릭 일꾼에 왔다. 당신은 일꾼에 아무런 힘도 없이 간다. 그러면 도로시는 어머니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된다.

이렇게 도로시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는 부담을 지니고 있었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모든 사람의 필요를 다 채워줄 수 없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연민의 세상을 제공했지만 그들 모두를 만족시키기엔 충분치 못했다. 그리고 물론 그것 때문에 도로시는 –나와 다른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적대감과 원한, 부적절한 비난을 받았다. 


출처: <DOROTHY DAY : Portraits by Those Who Knew Her>, by Rosalie G. Riegle, Orbis, 2003. <참사람되어> 편역, 200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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