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안에서 부른 하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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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 안에서 부른 하늘소리
  • 유수선
  • 승인 2017.02.1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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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선의 복음의 힘-1

[유수선 칼럼]

30여 년 전 나는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체험한 후 치유와 용서의 여정을 걸으며 복음을 전하도록 인도되었다. 입주아파트 축성하러 오신 신부님께서 갑자기 청년예비자교리를 함께 하자며 내게 ‘믿을 교리’ 파트를 맡기셨다. 다른 본당으로 이사갔는데 거기서도 마침 본당신부님께서 가정방문하는 기간 중이었다.

신부님께서는 벽에 걸린 다섯 아이의 사진을 보시더니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여정교육을 받고 성인예비자교리를 하라고 명하셨다. 그 뒤 나는 예비자교리뿐만 아니라 성서백주간 봉사와 첫영성체 교리까지 맡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하니 교회 안에서 했던 그 모든 일은 말이 봉사였지 교회, 아니 성령께서 나를 당신일꾼으로 훈련시키고 성장시켜 교회 밖으로 파견시키시려고 불러내신 탈출기의 시작에 불과했다.

15년 전 본당봉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어느 수녀원 기도모임에서 만난 형님께서 우리집에 오셨는데 난 자매들과 찬미(성가)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둘이 모이면 기도를 하고 셋 이상 모이면 찬미를 드리자는 원칙을 갖고 살고 있을 때였다. 형님은 이런 좋은 노래를 골방에서 자기들끼리만 부르지 말고 한 번만이라도 구치소 형제들에게 들려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셨다.

조심스러웠지만 성탄절도 다가오고 있어 자매들과 함께 캐롤을 불러드리자고 응답했다. 2주쯤 지나 책임봉사자가 집안사정이 생겨 그만 두게 되고 나는 다음 해부터 아무 준비없이 5년 동안 그 구치소 책임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교정 사목하는 신부님 수가 적어 월1회만 미사를 드리고 3주는 봉사자가 1시간 30분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했다.

사진출처=pixabay.com

서너 달 지난 어느 화요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복음을 선포하고 느낀 것을 나누며 성가를 부르고 있는데 한 형제가 손을 들더니 단 앞으로 달려 나왔다. “저는 제 아내를 죽인 살인자입니다. 이런 저도 정말 용서받을 수 있는 건가요? 막 노동일을 끝내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는데 다른 남자와 누워 있는 아내를 보자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올라 그만 아내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감된 이후 악몽에 시달리며 뜬 눈으로 밤을 지냈는데 이제는 눈을 감고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셔서. <주여 이 죄인이...> 제가 이 노래 불러 보고 싶습니다.” 하더니 얼마나 목청껏 소리치며 부르던지. 아직도 그 절규하던 몸짓과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때 나는 용서받고 싶은 인간의 깊은 목마름을 채우는 복음의 힘, 그리고 용서가 가진 생명력을 다시 체험하였다. 그리고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서 웅크리고 앉아 누군가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라고, 아버지께서 나를 죄악에서 부르시고 손수 가르치고 파견하셨다는 것을 알아들었다.

그 형제의 절규를 들으며 여기저기서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형제들은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제비새끼들 마냥 고개를 쳐들고 단 위에 서 있는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사랑스러웠다. 한 사람 한사람 달려가 안아주며 “괜찮아, 그래도 사랑해. 옛 일들은 다 잊어버려.” 라고 속삭이며 등을 토닥거리고 싶었다. 대신 생활 성가 <평화를 네게 주노라>를 불렀다.

그날 구치소 강당 안은 주님이 베푸신 자비와 평화의 강물이 모두를 휘감으며 넘실거렸다. ‘내 눈에도 이럴진대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 눈에는 얼마나 더 안타깝고 사랑스러울까? 맨발로 뛰어나와 둘째 아들의 목을 끌어 안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새 옷을 입히며 아들의 옛 신분을 되찾아주신 아버지, 그것도 모자라 큰 아들의 마음도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잔치를 베푸신 아버지의 모습이 내 가슴을 꽉 채웠다.

그 시간 그 곳은 수감 중에 아버지 집에 돌아온 아들이 환대를 받는 자리라 여겨졌다. 그래서 매주 구치소에 먹을 것을 가지고 갈 때는 가장 좋은 품질의 것을 마련해 정성껏 포장해 갔다. 매주 그 날 선포될 복음 말씀 중에 120명이 넘는 말씀카드를 봉사자들과 함께 만들어 갔다. 신자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빵만으로는 살 수 없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더 깊이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치소 형제들은 우리를 ‘찬미교회’라고 불렀다. 집회시간마다 모든 것을 잊고 우리 가운데서 말씀하고 계시는 하느님께 목청껏 성가를 부르며 찬미 드린 기억이 무엇보다 소중해서 그럴것이다. 인쇄소를 운영하다 들어 온 천주교방 형제 한 분이 구치소를 나가면 우리가 프린트 제본해서 가지고 다니던 생활성가 악보들을 책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침 반포4동에 새로 부임한 강 신부님께서 생활성가책을 만드는 일을 내게 맡기셨다. 형제에게 연락했더니 기꺼이 실비로 만들어주었다. 그 책 이름을 신부님께서 ‘하늘소리’라 명명하셨다. 신부님은 어떻게 아셨을까? 우리가 그 노래의 날개 위에서 천상의 시간을 보냈음을.
 

유수선 수산나
늘품공동체 돌보미, 초원장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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