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웬] 고독, 위대한 투쟁과 만남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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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 고독, 위대한 투쟁과 만남의 장소
  • 헨리 나웬
  • 승인 2017.02.1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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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길-15
Peter Vilhelm Ilsted 'Girl Reading a Letter in an Interior' 1908

고독은 변화의 용광로이다. 고독 없이 우리는 우리 사회의 희생자로 남아있고 가짜 자아의 환영 속에 계속 빠져 있게 된다. 예수 자신도 이 용광로 속으로 들어갔다. 용광로 속에서 그분은 세상의 세 가지 욕망과 대면하게 된다.

인기(“돌을 빵으로 만들라”), 명성(“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그리고 권력(“이 세상 모든 왕국을 주겠다”)의 욕망이다.

용광로 속에서 예수는 하느님을 자신의 정체성의 유일한 원천으로 확인했다(“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야 한다.”) 고독은 위대한 투쟁과 위대한 만남이 일어나는 자리이다. 가짜 자아의 욕망과 싸우는 투쟁 그리고 새로운 자아의 본질로 그분 자신을 내놓는 사랑의 하느님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자리이다.

고독은 사적인 치료의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고독은 회심의 자리이다. 낡은 자아가 죽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는 자리이며 새로운 사람, 인간이 떠오르는 자리이다.

고독 속에서 나는 나의 발판을 치워버린다: 이야기할 친구도 없고, 전화 걸 일도 없으며, 참석해야 할 모임도, 즐겨야 할 음악, 정신없이 빠질 책도 없다. 그냥 나 자신만 있다. ­벌거벗고, 부서지기 쉬우며, 약하고, 죄 많고, 빼앗기고, 부서진 나밖에 ­아무 것도 없다.

나의 고독 속에서 내가 직면해야 할 모습은 '아무 것도 없음'이다. 이는 '너무나 공포스러운 없음'이어서 나는 온 힘을 다해 친구들, 일 그리고 기분 전환꺼리로 달아나고 싶다. 그래서 나의 없음을 잊어버리고 내가 무엇인가 가치 있다고 믿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고독 속에 머물기로 결정을 내리자마자, 혼란스러운 생각들, 귀찮게 하는 영상들, 환영들, 기괴한 연상들이 마치 바나나나무에 매달린 원숭이들처럼 내 마음속에서 날뛴다. 이제 숙제는 내 고독 속에서 견디는 것, 나의 모든 유혹적인 방문자들이 문을 두드리는 데 지쳐서 나를 홀로 내버려두고 떠날 때까지 그냥 나의 방에 머무는 것이다.

그것은 가짜 자아에 죽는 투쟁이다. 그러나 이 투쟁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하기엔 너무나 역부족이다. 자신의 무기로 악마와 싸우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바보이다.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악의 힘을 무찌를 수 있다. 오직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고독의 시련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사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의 그리스도이고, 그분이 우리의 참다운 자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우리는 천천히 우리의 욕망이 사그러 지도록 할 수 있으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매일 물러나 머물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사막, 욕망을 떨쳐 버리고 우리 주님의 온화한 치유의 현존 속에 머물 수 있는 사막을 만들어야 한다.

고독은 단지 목적에 이르는 하나의 방법이 아니다. 고독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고독 속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분 모상대로 다시 지으며 세상의 욕망에 희생당하지 않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고독은 우리의 구원이 일어나는 자리이다.

-헨리 나웬의 <마음의 길>에서


*이 글은 1998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 올비스에서 출판된 <Henri Nouwen>(Robert A. Jonas 구성)을 부분적으로 옮긴 것입니다.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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