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종교, 노예제에서 형제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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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종교, 노예제에서 형제애로
  • 한상봉
  • 승인 2017.02.1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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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 & 프레이 베토 지음·조세종 역, 살림터, 2016.

쿠바 혁명군 사령관과 브라질 도미니코회 신학자 인터뷰. 잘 조합이 안 되는 직함 같지만, 피델 카스트로와 프레이 베토의 만남은 종교와 혁명에 대한 밀도 있는 대화라는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분열된 세계를 살아가는 신앙’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사실 로마식민지 팔레스타인에서 발생한 예수운동은 ‘종교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그 사건을 마음에 담아둔 무리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발생시켰다.

<카스트로, 종교를 말하다> (Fidel & Religion) 가 1985년 발행 되자, 인구 약 1,200만 명의 쿠바에서 100만 부가 팔려 나갔다고 한다. 프레이 베토 신부는 “이 책이 종교에 대한 좌파들의 선입견과 공산주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두려움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사실상 해방신학과 사회혁명가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가난’ 또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비참한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삶에 대한 깊은 연민과 가난한 이들의 해방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애당초 가능하지 않았던 대화였다.

해방신학은 브라질에서 가장 찬란하게 꽃을 피웠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수호자이며 해방신학의 원조로 알려진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신부는 쿠바 도미니코회 선교사였다. 쿠바의 수호성인인 ‘자비의 성모’, 그리고 멕시코 과달루페의 성모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민중들은 토착적이고 헌신적인 검은색과 갈색 피부를 지닌 마리아를 공경하고 있다. 이 대륙의 신학자들이 직면한 것은 ‘가난’이란 비인간적 상황이었으며, 여기에 대한 교회의 응답이 해방신학이다.

해방신학자들은 가난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사회과학이 필요했다. 프레이 베토는 “사회분석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두려워하는 것은 피타고라스에게 영향을 받을까봐 수학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지, 누가 개념을 만들었는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폴란드 출신의 교종 요한 바오로 2세조차도 회칙 <노동하는 인간> (Laborem Exercens)에서 계급 갈등과 사회적 불평등을 설명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개념을 빌렸다.

영성, 영에 따라 행동하는 삶

‘영성’은 영과 몸 가운데 ‘영적인 삶’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바오로 사도가 ‘영적인 몸’이라고 말한 것처럼, 복음은 인간의 삶 자체를 겨냥하고 있다. 예수님은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고 했다. 곧 영성이란 영에 따라 생활하는 삶이다. 쿠바 해방운동의 영웅인 호세 마르티는 “행하는 것이, 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야고보 사도는 ‘행동없는 믿음’을 문제 삼았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 2,15-17)

결국 삶의 방식을 결정짓는 것은 그들이 믿는 신앙일 텐데, 프레이 베토는 “모든 신자들이 같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나는 종종 내가 믿는 하느님과 레이건 대통령이 믿는 하느님 사이에 어떤 닮은 점이 있을까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예언자들이 우상, 즉 인간의 이해에 맞게 만들어진 신들에 의해 시달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아직도 많은 우상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이 라틴아메리카를 침범해 수백만의 원주민들을 살육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수많은 노예들이 아프리카에서 끌려와 땅을 경작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유산자계급의 지배가 이 땅에 자리 잡았습니다. 정복자, 노예소유자, 자본주의 압제자로 불리는 이름이,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이 될 수 있을까요?”

by Matin Erspanmer

예수의 하느님, 카스트로의 하느님

중세신학이 하느님을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이라고 말했지만, 우리가 복음서를 펼칠 때마다 발견하는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친구의 죽음 앞에서 울고, 배고픔을 느끼고, 사도들과 논쟁하고, 바리사이들을 화나게 하고, 헤로데를 모욕하고, 유혹을 당하고, 고뇌 속에서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에 신앙의 위기를 겪은, 부서지기 쉬운 한 사람”이라고 프레이 베토는 전한다.

이어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것처럼 예수님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느님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예수님의 하느님은 레이건이나 트럼프가 믿었던 강자와 부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히브리 노예들의 하느님이셨다. 예수님 역시 자기 자신을 압제받는 이들이나 당장 사랑이 필요한 이들과 동일시 하였다. 이런 사랑어린 태도는 예수님이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해방자임을 드러낸다.

한편 카스트로는 유럽인들이 라틴아메리카에 수입한 그리스도교는 지난 4세기 동안 “정복자, 노예상인, 착취자들의 종교”였다고 비판했다. 가톨릭교회는 노예제도를 비난하지 않았고, 원주민에 대한 범죄를 비난하지 않았으며, 원주민들의 토지, 부, 문화, 심지어 생명까지 강탈한 세력에 동조해 왔기 때문에, “오래된 불의에 저항해 온 혁명가들이 반종교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선언한 해방신학과 민중교회는 “그리스도교의 뿌리에 해당하는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영웅적인 순교자들의 역사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카스트로는 말했다.

카스트로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부자에게 주지 않았다.”

카스트로는 기성 교회가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흑인과 백인, 소작농민과 지주 사이에 ‘영적인 평등’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아예 가난한 이들을 ‘영혼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고 비판했다. 해방신학을 단죄한 미국정부의 <산타페문헌>을 작성한 이들이 자신들을 ‘산타페’(거룩한 믿음)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카스트로는 ‘교황이 된 농부’인 요한 23세 교황을 “존경하고 따뜻하게 기억한다.”면서, 해방신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교회를 차지했고, 이 민중의 형언할 수 없는 비극이 교회를 차지했다고 믿습니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는 유년기부터 들어온 친숙한 이름이며, 그분의 생각과 자신의 정치적 혁명적 신념 사이에서 어떠한 모순도 발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교리를 설파하기 위해 부자들을 선택하지 않았으며, 12명의 가난하고 무지한 노동자들을 제자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외 없이 가난했으며, 예수님은 그들을 먹이기 위해 물고기와 빵을 몇 배로 늘리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마찬가지로 쿠바의 혁명과 사회주의는 인민들을 먹이고 치유하고 가르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부자에게 주지 않았다.”면서 “아마 마르크스도 산상설교에 동의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레이 베토 “가난한 이를 배신한 자는 그리스도를 배신한다”

신앙인이면서 혁명가가 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했지만, 그리스 도교는 초기교회부터 혁명가들과 같은 운명에 동참해 온 역사를 지니고 있다. “압제당하는 가난한 이들의 종교”였던 초기교회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황제권력에 저항하다가 원형경기장에 끌려가 가혹한 박해와 탄압을 받았다. 가난한 노동자 농민들의 해방을 갈망하던 공산주의자들도 그들처럼 지배권력에게 난폭하게 박해받았다.

그들은 나치 독일에서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한국, 베트남, 칠레 등에서도 국가권력에 의해 살해당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이 군사정권에서 이들처럼 살해당했다. 카스트로는 “나는 현대의 혁명가들이 당하는 억압과 원시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억압 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온갖 형태의 노예제에 반대하고, 형제애를 추구했기 때문에 순교한 것이다.

프레이 베토는 “가난한 이를 배신한 자는 그리스도를 배신한다.”고 했는데, 카스트로는 “가난한 이와 소원해진 사람은 그리스도와 소원해진다.”라고 말했다. 모든 점에서 종교와 혁명이 일치할 수는 없지만, 프레이 베토와 카스트로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한 사람이 신앙인이면서 동시에 일관된 혁명가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사랑의 혁명”이라 불렀는데, 도로시 데이 와 시몬 베유, 로메로 대주교 같은 분들이 그러한 사랑의 혁명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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