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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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 김신윤주
  • 승인 2016.04.27 16: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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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자, 사회 비평가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춰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소리의 박자가 어떠하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으로부터 들리든 말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를 한 뒤 잠시 교사 생활을 했다. 두 권의 책을 냈지만 사실상 그의 생전에는 모두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 중 2년여 동안 월든 호숫가에 은거하며 고독안에서 뽑아 올린 작품 <월든>은 이제 미국의 고전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인물 자체가 미국의 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는 불복종의 정신, 자연 안에서 본성을 회복하려는 열망, 소신을 끝까지 지키는 강한 의지를 자신의 삶 자체로 구현하였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허클베리 핀처럼 ‘그 땅에서 벗어나기’를 뜨겁게 갈망하였다.

소로는 ‘문명화된 삶’이라 불리는 노예 상태뿐만 아니라, 사회적 위선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는 고독과 수감, 혹은 이웃들의 조롱에도 아랑곳없이 자신만의 나침반을 읽고 자신만의 확고한 삶을 선택했다.

비록 어떤 제도적인 종교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도가의 현자들과 그리스도교의 사막 교부들이 가지고 있던 무엇인가가 소로 안에도 있었던 것이다. 소로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가치들을 지우고 대신에 ‘제 손으로 직접 얻은’ 삶의 가치를 경험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품었다. 그것이 결국 1845년 콩코드의 유명한 월든 호수의 은거 생활로 이끌었다. 그처럼 “인간 집단을 조용한 절망의 삶으로 이끈다.”고 표현했던 세상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마치 사막으로 향했던 초기의 교부들처럼, 소로는 ‘세상’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 세상의 삶 안에 숨어있는 ‘죽음’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는 참된 삶을 살고 인생의 정수만을 경험하고자 숲으로 갔다. 자연이 내게 알려주는 가르침을 배워 세상을 의미 있게 살다가 이승을 떠나고 싶었다.”

그는 집짓기, 먹을 것 구하기,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자연 세계와 내면 세계를 깊이 주시하면서 삶의 세밀한 부분들을 꼼꼼하게 기록하였다. 거대한 자연에 둘러싸인 채 소로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빗속에 앉아 “소나무의 모든 잎사귀 하나 하나가 자비로운 사랑과 연민으로 팽창하고 부풀었으며, 내 친구가 되어주었다.”고 읊조렸다.

<월든>은 자연과 영적인 교감을 나누면서 느끼는 신비한 황홀감을 묘사한다. 이런 소로의 체험은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커진 요즘 세대에게 ‘실질적인’ 목소리로 다가온다. 일종의 사막 교부들처럼, 소로는 월든에서 광야를 발견하고, 새로운 영적 여행을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항구이고 골짜기인 소로의 도덕 세계에는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대륙들과 바다들이 있었다.”

이 도덕적 여행에서 소로는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와 누추함을 제거해 버린 채 단순히 “자연의 신비” 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여행에는 깊은 윤리적 차원이 존재했다.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를 심오하게 깨달으면서 그는 자신이 노예제도를 허가하는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매사추세츠 주가 노예가 없는 “자유 주(州)” 였다는 사실도 소로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오늘날 이 미국 정부에 대하여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 올바른 자세일까? 나는 대답한다. 수치감 없이는 이 정부와 관계를 가질 수 없노라고 말이다. 나는 노예의 정부이기도 한 이 정치적 조직을 나의 정부로 단 한순간이라도 인정할 수 없다.”

그의 많은 친구들도 노예 폐지론을 지지하였으나, 소로는 단지 그렇게 말로만 떠드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월든 호숫가에서 은거 중이던 1845년, 소로우는 멕시코와 벌이는 전쟁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거두어들이던 인두세 납부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체포된다. 소로는 그 전쟁이 노예제도를 연장시키는 데 기여하는 제국주의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그 세금이 부정의(不正義)라는 기계에 기름을 제공하고 있으니, 세금을 거부하는 것으로 자신의 미약한 무게이나마 그 기계에 대한 ‘마찰 저항’으로 사용하겠다고 결심했다.

납세거부는 단순히 행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하룻밤을 감옥에서 지내고 친척들이 대신 세금을 내준 다음에야 그는 석방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양심의 권리와 불의한 법적 제재에 저항할 의무에 대해 쓴 <시민 불복종의 의무에 관하여>라는 에세이를 쓰는데 영감을 주었다. 이 글은 인류 역사상 나타난 가장 큰 울림 가운데 하나였다. 이글에서 소로는 이렇게 외쳤다.

“단 한 사람이라도 부당하게 감옥에 가둔다면, 그런 정부 아래서 정의로운 사람이 있을 곳은 역시 감옥 뿐이다.”

그렇지만 소로의 메시지가 미국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로를 ‘사회적 일탈자’ 또는 ‘해롭지 않은 괴짜’ 정도로 여겼다. 그 세기말에 이르러서야 <시민 불복종의 의무에 관하여>가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도덕주의자인 레프 톨스토이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톨스토이에게 영향을 준 소로의 정신은 이후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에게로 이어졌고, 급기야 간디를 통하여 미국의 비폭력 자유 투쟁의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에게로 전해졌다. 소로의 정신은 이처럼 길을 에둘러서 다시 조국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러한 파장은 1862년 5월 6일 소로가 결핵으로 죽을 때까지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소로는 사회비평가로서 평생 “가장 깊은 잠에 빠졌을 때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는 새벽에 대한 한없는 기대감” 속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았다. 그 희망에 찬 목소리가 <월든> 마지막 페이지에서 울려 나온다.

“우리의 눈을 어지럽히는 빛이라면 우리에겐 어둠에 불과하다. 우리가 깨어 기다리는 날만이 동이 트는 것이다. 새벽은 다른 곳에 있나니. 태양은 단지 아침에 뜨는 샛별에 지나지 않는다.”


Shine Shin-Kim, 김신윤주 수산나.
아티스트, 작가. 2013 년 뉴욕에서 대중참여예술인 원하트 프로젝트 시작,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한반도의 평화, 물신주의와 신자유주의, 인권, 사회 정의 차원에서의 위안부 문제 등을 다루며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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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2016-05-23 02:00:31
오래전 읽었던 '월든'을 다시 상기시켜주네요. 글을 읽는 동안 마치 저도 은둔생활을 하는 것처럼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던 것 같아요. 수산나자매님, 또 이렇게 글로 만나니 새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