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웬] "말씀은 힘이 세다" … 현존과 변화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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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 "말씀은 힘이 세다" … 현존과 변화의 언어
  • 헨리 나웬
  • 승인 2017.02.0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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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길-14
사진출처=pixabay.com

우리는 말이 값싼 취급을 받는 세계에 살고 있다. 말은 우리를 집어삼킨다. 광고, 교통신호판, 팜플렛, 책, 칠판, 화면, 신문 등. 말들은 움직이고 나불거리며, 회전하고 더 커지고 더 번쩍이고 더 뚱뚱해진다. 말은 우리에게 온갖 크기와 색깔로 다가온다­. 그러나 마침내 우리는 말한다. “그런데 말은 그냥 말일 뿐이야.”

말의 숫자는 늘어나지만 말의 가치는 줄어들고 있다. 말의 중요한 가치는 정보를 주는 것에 있는 것 같다. 말들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알려준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며, 어디를 가고 어떻게 그곳에 가는지 알기 위하여 말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성찬례의 말들이 대부분 우리에게 무엇인가 알려주는 말로 들리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성찬례의 말들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말해주고 가르치며 훈계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 말들을 그 전에도 들었으므로 깊은 감동을 받지 못한다. 우리들은 성찬례의 말들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 말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우리는 놀라거나 감동을 받으리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냥 “똑같은 옛 이야기”로 듣는다. 책으로 읽든 제단에서 들리든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이렇게 되면 말이 성사적인 측면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이 비극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성사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느님의 말씀은 거룩하다. 거룩한 말로서 그것은 의미하는 바를 현존하게 만든다. 예수가 길에서 만난 두 슬픈 여행자들에게 말하고 그분에 관한 성서의 말씀들을 설명했을 때, 그들의 마음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즉 그들은 그분의 현존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분 자신에 관해 말하면서 그분은 그들에게 현존하게 되었다. 말씀으로 그분은 그들에게 그분에 대하여 생각하고 알려주고 기억을 되살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말씀을 통하여 그분은 그들에게 참으로 현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의 성사적 특성이 의미하는 것이다. 말은 그 자체가 표현하는 바를 만들어낸다.

하느님의 말씀은 항상 성사적이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히브리어에서 “말하는 것”과 “창조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은 똑같은 말이다. 문자 그대로 번역한다면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하느님이 빛을 말했더니 빛이 존재했다.”

하느님에게 있어 말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거룩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하느님의 현존으로 가득하다는 의미이다. 자주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서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키라는 어떤 권고로 생각한다. 그러나 말씀의 충만한 권능은 그것을 들은 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시키는 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들을 때 그 말씀이 거룩한 일을 한다는, 말씀자체의 변화시키는 힘에 있다.

복음서들은 그 말씀에 하느님이 현존하는 모습들로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항상 나자렛 회당에 나타난 예수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는다. 그곳에서 그분은 이사야서를 읽는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가 4,18-13).

이 말씀을 읽고 나서 예수는 말했다.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갑자기, 가난한 이들, 묶인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은 회당 밖의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로 언젠가 해방될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들은 바로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 하느님은 현존하고 치유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언젠가 후에 우리의 일상 생활에 적용해야 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여기에서 지금 우리가 듣는 것을 통하여 그리고 듣는 가운데에서 우리를 치유하는 말이다.

<뜨거운 감동의 마음으로>에서


*이 글은 1998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 올비스에서 출판된 <Henri Nouwen>(Robert A. Jonas 구성)을 부분적으로 옮긴 것입니다.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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