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인듯 신자 아닌" 김기춘, 서석구, 나경원, 어청수, 심재철…
상태바
"신자인듯 신자 아닌" 김기춘, 서석구, 나경원, 어청수, 심재철…
  • 이준석
  • 승인 2017.01.16 11: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준석 칼럼]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를 예수에 비유하는 궤변으로 유명해진 서석구 변호사는 '빈첸시오'다. 딸을 성신여대에 부정 입학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보수 정치인 나경원은 '아셀라'다. 시위대를 과격 진압한 이력을 지녔고 2008년 촛불 정국에서 이른바 '명박산성'을 설치한 전 경찰청장 어청수는 '프란치스코'다. 본회의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여성의 나체 사진을 검색해 보다 걸렸어도 현직 국회 부의장으로 앉아 있는 심재철은 '베드로'다. 그리고... 긴 설명이 필요 없는 그 악명 높은 김기춘은' 스테파노'다.

지난해 10월 17일 광화문 광장 시국미사에서 마지막 강론을 마치고 며칠이 지난 후 수도회 한 후원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정확한 연령은 알지 못하지만 60대 후반이나 70대 초반은 족히 될 것으로 짐작되는 여성 분이시다. 내가 신학생 때부터 안면은 있었는데 살갑게 대화를 나누고 깊이 친밀감을 이루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랬기에 뜬금없는 메시지는 참으로 생경한 것이었다.

메신저를 열어보니 대뜸 "허락은 맡고 이런 일을 하고 다니느냐?"며 따지는 투의 질문이 가장 먼저 보였다. 아마 광장에서의 내 강론을 인터넷을 통해 접하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리라. (나는 그때 '정권은 곧 민중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백남기 어르신의 시신을 탈취하여 부검을 시도하려는 검찰의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나는 답은 하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허락? 내 양심의 허락은 받았지. 오히려 나처럼 하지 않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 이런 행위를 하지 않을 허락은 신께로부터 받으셨나?' 그리고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열 댓개의 메시지가 연달아 나의 휴대전화를 쥐고 흔들었다. 수도회 창립자의 전기를 샅샅이 뒤져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언급만 쏙쏙 골라 캡쳐한 이미지 파일을 연달아 보내고 있었다. 중간중간 훈시와 잔소리도 곁들여 가며 나를 설득했다. 마지막으로 보낸 사진은 정말 압권이었는데, 보수 일간지를 촬영한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 같은 극우 단체의 기관지를 촬영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신문지에 큰 타이틀로 "김일성교에 빠진 사제들!"이라고 적힌 지면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분은 내게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고 말하려 하셨나 보다. 나를 정치 성향이 강한 사람으로 보았다면 그분의 안목은 정확한 것이다. 나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왜냐하면, 나는 19세기 이탈리아가 아닌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고, 정치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21세기에 살고 있으며, 시민들의 직접 참여가 훌륭한 종교인의 덕목으로 인정받는 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정치적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그분은 나보다 더 정치적인 것 같다. 그분의 정치적 위치는 극우 보수 기득권자들의 자리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는 "김일성교에 빠진 사제들"이라는 제목이 떡하니 붙은 옐로우 페이퍼 지면을 내 스마트폰에 내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왜 엉뚱하게 정교분리의 원칙을 제시하면서 마치 정치에 무심한 것처럼 이야기할까? 아마도 근래 벌어지는 적폐를 보며 자신이 수구보수주의자임을 자랑스레 표명하기는 부끄러우니 차라리 종교는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진보적 정의를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를 좀 가라앉히고자 했던 것 같다. 이건 좀 그렇다. 차라리 나처럼 '나는 정치적이다.'라고 공언하는 게 더 떳떳할 텐데...

한 사람의 천주교인으로서 그분의 행동을 보면 칭찬할 부분이 적지 않다. 주기적으로 수도회가 돌보는 청소년들을 위해 수업 등의 봉사를 하러 오시고, 물질적인 후원도 적잖이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각종 수도회 행사나 모임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시고, 신과 교리에 대한 신념은 대단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분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위와 같은 모순과 마주하게 된다.

글머리에 언급한 인물들도 종교인으로서는 나름의 열성을 지닌 인물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머물면서 이웃들에게 고통을 주고,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상처를 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 종교적으로 열성적인 사람들이 사회적으로는 이렇게 다른 길을 가는가? 이러한 사실을 관찰한 후 나는 감히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례와 제도로서의 종교는 새로운 시민 사회를 성장시키는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종교 안에 충실히 머물며 사회 안에서는 폐악을 저지르는 이들의 모습이 이를 입증한다. 내가 보기에 제도 종교는 철저히 해체 중이다. 나는 이것이 좋은 일이라고 본다. 한동안 혼란스럽겠지만, 시효가 다한 구조와 뼈대가 산산이 무너지면, 처음에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던 신비스런 이야기와 그 해석만이 남을 것이고, 본질적인 가치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무엇이 세워질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무너지고 망하는 일만 남았다. 그래도 실망은 말기를... 종교가 망해도 신은 존재하고, 우주는 어떤 형태로든 그와 소통하니까...

이상 횡설수설의 결말은 다음과 같다.

종교적 충실성과 사회적 윤리는 전혀 무관하다.
그래서 열심한 신자가 되기 이전에
함께 공존하는 바른 시민이 되어야 한다.
당신이 어떤 신을 믿든지 간에...
 

이준석 신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