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피정] "남자가 없으면 미사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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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피정] "남자가 없으면 미사도 없어요"
  • 최현숙
  • 승인 2017.01.1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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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칼럼]

오래 전 문득 4박 5일을 만들어 경기도 남양주 화접리에 있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으로 개인피정을 갔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미사 참여와 기도와 일상과 숙박사례와 담배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묵상과 독서와 산책과 피정 온 사람들과의 대화로 자유롭고 편하게 쉬었다. 지금도 그 수도원과 농장과 수사들과 신부가 그렇게 있기를 바란다.

여덟 명의 수사들이 수도원 내 넓은 배농장과 채소밭들을 경작하면서, 기도와 노동을 핵심 일상으로 함께 살고 있었다. 일이 많을 때는 주변 군부대 군인들과 지역주민들과 가톨릭 신자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갈수록 수도자나 성직자의 지원이 줄어들고, 그 중 특히 남자 수도자의 지원이 가장 적단다. 남성임에도 교회 안에서 신부로서의 권력을 포기하고 스스로 수도자를 자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결격사유가 없음에도 신부 아닌 수도자를 구태여 택하는 ‘자발적 가난’에 마음이 간다.

사진=김용길

수사신부와 고백성사를 했다. ‘고백성사’의 의미와 의식 때문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문득 마음이 통할만한 사람과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신부라는 집단이나 개개인을 신뢰할 근거는 없지만, 노동과 기도를 중심에 둔 수도회의 신부여서 가능성을 둔 거다. 사회운동에 참여한 후 가톨릭의 고백성사는 내게 위로와 힘이 아닌 소통 없는 이견과 권력관계였다. 하여 그 때도 성사(聖事)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교회는 물론 예수조차 내겐, 타고 물을 건넌 후 물가에 두고 떠난 배다.

고백소니 그런 게 따로 있지 않고, 신부의 공간 한쪽 테이블에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지도 깊지도 않은 대화였지만, 다행히 신부는 ‘교회를 떠났다’고 미리 알린 내 신앙과 사회활동을 잘 이해했다. 보수 교회와 다른 내 신앙적 확신과 활동들에 대해, 예언자적 소명이라며 분별력을 가지고 더 많이 기도하며 자신의 길을 가라고 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라. 그러면 최현숙 아기안나의 영혼이 안식을 얻으리라" 라는 성경 구절을 보속으로 주며, 틈틈이 묵상하며 지금처럼 살라고 했다.

복음서에서 따온 이 구절은 그 때도 지금도 내게 꼭 필요한 문구다. 힘과 느낌과 경로를 늘 고민하는 일상과 활동에서, 겸손과 온유를 견지하는 것은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 그만큼 또 아실아슬하고 복잡한 딜렘마다. 권력자들에 의해 굴종과 입 다뭄으로 해석되고 악용된 용어고, 때론 무기력과 무관심과 맹종에 대한 면피이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 그 신부와 나와 예수 간에 오고간 '겸손과 온유'는 진정한 용기를 살아내는 자발적 가난으로 통(通)했다. 문득 만난 수사신부에게 교회에서 느낀 상처와 신경질까지 위로를 받는 성사(成事)였다. 굳이 세례명을 묻고 답하고 호명한 것은, 견딜 만 한 세리모니라 친다.

수사들의 그레고리안 성가를 생음악으로 듣고 싶어 미사에 참여했다. 본당도 제대도 수사들의 생음악도 소박해서 좋았고, 염려했던 것 역시 고스란히 싫었다. 미사에는 같은 베네딕도회 수녀원에서 온 수녀 일곱 명을 포함해 신부와 수사들과 피정 온 사람 예닐곱이 참여했다.

수녀들이 구태여 남자수도원까지 온 것은, 가톨릭의 미사는 신부라는 남자가 없으면 불가능한 성사(聖事)여서다. 성체를 받으러 나가는 행렬의 순서조차 수사, 수녀, 남성평신도, 여성평신도 순이었다. 생음악 덕에 소박해지고 있는 마음에 분심(分心과 憤心)이 들게 하는 이 가부장적 서열에, 소리는 참고 그냥 웃었다. 싸우다 떠나 이제 남의 동네가 된 곳에서 소리까지 내는 것은 소모이고 과잉이다. 바쁜 다른 일이 많다. 매년 교황청에 여성 사제를 요청하는 일부 여신도들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미친년 소리를 듣고 있다.

수도원을 나오는 길에 만난 신부가 ‘잘 가라’고 해서 좋았다. ‘돌아오라’고 했다면 또 신경질이 날 뻔 했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및 르뽀문학 작가
<할배의 탄생>, <천당과 지옥이 이렇게 칭하가 날라나>,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 등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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