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구 빈첸시오, 박근혜가 예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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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구 빈첸시오, 박근혜가 예수인가?
  • 김경집
  • 승인 2017.01.11 0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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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집 칼럼]

누구나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유를 갖으며 그것을 제약받지 않고 표현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다. 그러나 그 생각과 표현이 자유로운 개인의 사적인 경우와 달리 공적 역할을 수행할 때는 그 자유와 권리에 대해 공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은 위협이나 억압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판단할 때 과감하게 실천할 수 용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당당하게 표현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가상한 일이다.

그러나 편향된 생각이나 시대착오적인 판단을 일반화시키거나 강요하는 것은 위험하다. 대통령의 헌법 위반과 대통령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의무를 방기한 것에 대해, 그리고 그의 무능력과 무지와 무책임에 대해 분노하며 국정 농단으로 더 이상 국가가 퇴행하고 붕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민들이 촛불로 뭉쳤다.

대통령은 부당하게 고난받는 예수인가?

시민들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것도 아니고 강성 노조의 교묘한 선동에 속아서 귀한 주말마다 모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 게 아니다. 그건 분노한 민중이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폭동이나 쿠데타를 모의한 것도 아니다. 낡고 무능하며 뻔뻔하고 헌법정신을 농락하며 온갖 협잡과 비위도 모자라 시민들을 감시하고 억압하며 통제하려 하면서 탐욕적인 비선에 의존한 대통령은 이미 그 존재 의미를 상실했기에 퇴진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것은 도도한 시대정신이다. 그래서 국회도 다수의 여당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으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기도하는 서석구 변호사. 사진출처=여성경제신문

그런데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있었던 대통령 탄핵심판 제2차 공개 변론에서 우리는 아주 해괴한 모습을 목격하고 아연했다. 대통령 측 법률대리인인 서석구 변호사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기도는 신과의 경건한 대화이며 성찰이다. 변호사인 그가 ‘정의’와 ‘진실’을 위해 기도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쏟아낸 말들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그의 기도는 아무래도 정의와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던 듯하다. 그는 탄핵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소크라테스는 사형선고를 받고, 예수는 십자가를 졌다. 언론은 부실한 자료를 토대로 다수결의 함정을 이끌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여론의 모함으로 사형장에 가는 소크라테스와 같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부당하게 고난당하는 예수’인 셈이다. 놀랍다 못해 섬뜩한 주장이다.

예수님은 권력자 편에 서지 않았다. 심지어 교회의 기득권자들 편에 서지도 않았으며 그들을 따갑게 질책했다. 결국 그들이 예수님을 죽였다. 예수님은 언제나 병든 이들, 가난한 이들, 권력에 짓눌려 눈물 흘리는 이들과 함께 하셨다. 요즘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는 가장 강력하고 매서운 좌파 지도자로 보일지도 모른다. 사악함과 불의에 대해 비판하고 로마 식민 권력과 유착한 사두가이와 겉으로만 율법의 엄격성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려던 바리사이를 질책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그래도 바리사이들은 믿음도 학식도 깊었고 율법에 정통했다. 바리사이를 비판하지만 우리는 그들만큼도 되지 않는다. 바리사이들이 야훼의 율법을 깊이 공부하고 유대 정신과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공부도 하지 않고 그저 기복의 바람만 품으며 성직자와 교회의 제도와 질서에만 충성하고 있지 않은가. 서변호사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누구나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있다. 신념을 지킬 권리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은 전체적 정의와 진리의 범위 안에서다.

서석구 빈첸시오와 대수천은 누구인가?

그는 가톨릭신자다. 빈센치오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는 나름대로 신실한 신자라고 한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다. 게다가 그의 행보를 보면 아찔할 지경이다. 그는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대수천)’의 공동대표이기도 한데 그 모임의 상당수는 극우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그들은 정의평화위원장인 유흥식 주교에게 ‘김정은의 기쁨조’라고 비판하며 정의구현사제단은 ‘나라 망치고 교회 망치는 종북의 온상’이라며 해체를 요구했다.

대수천은 강우일, 김희중, 이용훈, 유흥식 주교 등을 대놓고 ‘친북, 반미, 반정부 정치 사제’로 규정하고 교회에서 퇴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회 내 극우단체다. 거기에 김모, 오모 신부 등도 속했다. 자신들은 진정 교회와 국가를 위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그들은 극우의 ‘홍위병’이며 교회 내에서 정의와 진리를 훼방하려는 사람들일 뿐이다.

서석구 변호사는 어버이연합의 법률고문이기도 한데 어버이연합이 전경련의 자금 지원을 받았고 청와대에서 개입하였다는 주장에 대해 전면 반박하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의 일을 예사로 했던 이다. 심지어 20대 총선으로 여소야대가 된 이후 거대 야당이 애국보수 시민단체 죽이기에 나섰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연민은커녕 유족들을 조롱하고 폄하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면서 촛불집회의 주장은 인민재판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고 있다.

어쩌다 교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정치사회적 신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적어도 교회의 신자들이라고 하면 ‘정의와 진리, 그리고 사랑’이라는 복음의 보편 정신 안에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들이 준동하는 건 현재 한국천주교회 수장의 애매한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대수천의 판단은 보수도 아니다. 시대정신을 외면한 수구고 극우적 파시즘이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가 사드 배치 반대 성명을 발표하자 교구청 앞에 몰려가 “종북 주교 물러가라!”고 외치면서 주교를 위협하는 것이 파시스트의 행태와 무엇이 다른가.

지금 이 나라가 ‘나라꼴도 못 되는’ 형국이 된 가장 근본적 이유는 대통령의 무능, 무지, 무책임과 시민민주주의에 대한 무경험 등이겠지만 그런 것에 현혹된 채 시대착오적인 재벌 옹호, 감시와 검열, 차별과 억압, 경색된 안보 등의 구호에 아무 비판의식 없이 표를 던진 우리 모두의 탓이다. 그리고 사회가 지옥이 되고 있는데도 오불관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교회 권력 안에서만 안주한 교회지도자들의 직무태만도 큰 몫을 했다.

교회, 악의 세력에 들러리 서지 말아야

예수님은 당시의 사악한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에 맞서다 죽임을 당하셨다. 그 맞섬은 당신께서 권력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 인간의 존엄성, 정의와 자유 등을 훼손했기에 비판했고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라고 외쳤기 때문에 그게 불편했던 자들(그게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에 의해 처형되셨다. 교회에서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제대로만 가르쳤어도 청맹과니 같은 극우 파시스트들이 차마 날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교회가 반성해야 할 점이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 이들은 아마도 예수님이 재림하면 다시 그분을 체포해서 사악한 권력에게 신병을 넘길 것이다.

“민중총궐기가 주도하는 퇴진집회에 대한민국 운명을 맡기면 이건 예수님이 바라는 바가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서석구 빈첸치오 변호사와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갖는 이들은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지금 국정을 농단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망가뜨려 미래 동력마저 송두리째 무너뜨린 저 악의 세력을 감싸며 국가 안위와 정의를 운운하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들의 신념까지 간섭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악의 대열에서 들러리 서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진정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어떻게 전하고 가르치고 있는지 교회의 지도자들이 제발 깊이 반성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을 꾸짖으신 질책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루카 11, 47~48)

우리 모두 눈을 부릅뜨고 진실을 봐야 한다.
 

김경집 바오로
인문학자,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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