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에서 자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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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에서 자는 사람들
  • 최충언
  • 승인 2017.01.0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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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언 칼럼] 

정호승의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 <길바닥>이라는 시가 있다. 내 집을 떠나 길바닥에 나앉은 것은 푸른 하늘을 끝없이 날던 종다리가 잠시 길바닥에 내려앉았기 때문이요, 봄바람에 흩날리던 민들레 홀씨가 길바닥에 내려앉아 드디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요, 길바닥에 나앉아 마음 놓고 우는 아이만큼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내 너를 떠나 길바닥에 나앉아 밤마다 개미집에 잠드는 것은 개미집에 켜진 조그만 등불 하나가 밤새도록 밤을 밝히기 때문이고, 내 길바닥에 나앉아 눈을 뒤집어쓰고 고요히 기다리는 것은 눈 내린 길바닥마다 수없이 새들의 발자국을 찍고 싶기 때문이라고 노래한다.

가난은 구조적인 악이면서 동시에 은총이라는 말을 곰곰이 새겨본다. 성탄 전후에 참여한 활동의 영향이 컸을까? 길바닥에 나앉은 사람들을 '홈리스'라고 부른다. 페이스북에서 본 동영상 하나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사회실험을 위해 만들어진 동영상으로, 때는 미국 뉴욕 시내 한 복판이다.

영하 15도의 얼어 죽을 만큼 추운 날씨에 갈 곳 없어 보이는 한 소년이 길거리에 홀로 방치되어 있다. 낡고 찢어진 티셔츠 차림에 검은 쓰레기봉투 한 장으로 몸을 녹이는 소년이 누워 떨고 있다. 무심히 소년을 스쳐지나가는 행인들이 야속하다. 두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를 도우려 다가온 유일한 한 사람은 다름 아닌 홈리스였다!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아이에게 입혀준다. 배고프냐고 물은 뒤, 안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허기를 채우라고 아이에게 건네준다. 우리는 덜 가진 사람이 가장 많이 베푸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사진=한상봉

찾아가는 봉사활동, 아웃리치

12월 30일에 지인들과 심야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아웃리치(outreach)의 사전적 정의는 나가서 닿는다, 찾아가는 봉사활동을 일컫는다. 지역주민에 대한 기관의 적극적인 봉사, 원조, 지원활동이다. 부산지역의 노숙인 복지활동을 하는 부산희망등대 종합지원센터 활동가들과 함께했다. 저녁 열시부터 새벽까지 활동하는 팀과 저녁 7시부터 열시 반까지 활동하는 팀이 있었다. 나는 후자의 팀에 합류해 봉고차에 탑승해서 부산진역, 초량역 지하도, 부산역 대합실과 초량 지하차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도 길가에서 잠을 자는 홈리스들을 찾았다.

매주 금요일 밤에 아웃리치를 나간다고 했다. 부산지역에 홈리스들의 인원은 140명 전후란다. 햇반과 옷, 운동화, 손난로를 전해주고 보온병을 가져가서 온수로 차도 한 잔씩 타드리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조현병에 걸려 노숙하시는 분, 성소수자라서 부모님께 피해주기 싫어 거리로 나섰다는 박아무개 청년 등 다들 사연은 소설 한권은 될 터이다. 홈리스의 손을 잡고 대화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나를 놀라게 했다. 노숙인의 낡고 헤진 장갑을 보자,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장갑을 벗어 손에 껴드리는 모습은 감동의 물결이었다.

12월 23일은 미션을 수행하기로 한 날이었다. 부산동구 쪽방상담소 도우미들과 쪽방촌과 부산역을 돌아보았다. 먼저 여인숙에 열 두 달 내내 기거하는 쪽방촌 아저씨들에게 준비해 간 떡과 차를 나누고 부산역에 집결했다. 평소에도 쪽방촌 사람들과 홈리스들의 대부이신 장씨 어르신과 한 조가 되어 대합실을 여러 번 돌았다. 부산역 대합실 2층과 3층에서 노숙을 하는 60여명의 홈리스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떡과 라면을 나누고, 보온병 4개에 담아간 따뜻한 물로 쌍화차와 커피를 타 드렸다.

역 대합실 2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홈리스들에게 떡과 라면을 돌리고 내려가려 할 때, 저쪽 구석에서 한 분이 우리에게 걸어와 말을 건넸다.
"저기 안에도 다섯 명이 있어요. 왜 저희는 안주고 갔어요? 저 눈물 났어요."
승강기에 가리고 어두워 미처 보지 못했나 보다. 가슴이 울컥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가서 보니 다섯 분이 아니다. 그 구석에서 계단 아래에도 누워 있어 모두 일곱 분이었다. 누워 있어도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의 미션은 자정을 40분 넘긴 시간에 끝났다. 기차를 기다리던 많은 승객들이 우리의 활동을 보고도 말이 없고 멀뚱멀뚱 쳐다보며 강 건너 불구경을 한다. 무관심이 체화되었다고 할까? 자정이 넘었으니 크리스마스 이브다. 성당과 교회에서는 오늘밤 성탄전야 미사와 예배로 아기 예수 오심을 축하하고 경배를 드릴 것이다. 

성탄절은 가난하게 태어나고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죽은 예수가 말구유에서 첫울음을 운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대합실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단체사진을 찍고 서로 고마웠다고 인사하고 집으로 향했다. 이 분들을 위한 쉼터나 환대의 집을 향한 목표를 더욱 되새기는 밤이다. 가난한 홈리스로 오시는 예수를 만난 행복한 밤이었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일 아침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주변에서 기거하는 노숙자 8명을 바티칸 호텔로 초청해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생일에 초청받은 노숙자들은 생일 선물로 해바라기 꽃다발을 준비해 교황에게 선물했으며, 교황은 식사 시간 내내 노숙자 한 명 한 명과 대화를 나누며 팔순 아침을 보냈다고 전했다. 자비와 희망, 평화의 메시지를 몸소 보여주는 교황도 우리나라에서는 ‘빨갱이’ 종북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잠자리 눈물만큼이라도 사랑을 나누자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에서 모두 진술을 통해 서석구 변호사(박근혜 대리인, ‘대한민국 수호 천주교인 모임’ 대표)는 “예수도 군중재판으로 십자가를 졌다”며 탄핵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그가 재판정에서 두 손 모으고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타박이 고구마를 먹다 목이 멘 듯했다. 저런 인간과 같은 하느님을 믿는단 말인가!

한국의 그리그도교는 죽은 게 틀림없다. 내가 아는 예수는 언제나 가난하고, 헐벗고, 병들고, 억울하게 옥에 갇히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잘 돌보라는 메시지를 주신 분이다. 철저하게 평생을 공인으로 살아서 그분의 생애를 공생애라고 부르지 않은가. 공과 사를 구별 못하는 바보들의 행진을 본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서푼짜리 오페라>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어떤 사람은 어둠 속에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빛 속에 있다. 그리고 빛 속에 있는 사람들은 볼 수 있지만,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은 볼 수 없다."

우리가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볼 수가 없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먼저 삶이란 큰 빵에서 자신들의 조각을 자르는 것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가난을 두려워하고 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을 만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왜 그럴까? 물질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편리한 삶을 지탱시켜주는 어떤 것들에 사슬처럼 매여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나 ‘정의를 실천하는 믿음’을 위해 용기를 내자. 한 몸 뉘어 쉴 집이 없는 분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빅토르 위고는 “당신들은 구호를 받는 가난한 자들을 원하지만, 나는 가난이 없어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쪽방, 비닐하우스, 고시원, 여인숙, 노숙인 자활, 재활, 요양시설 거주자 등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되고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이웃들에게 잠자리 눈물만큼이라도 사랑을 나누자. “당신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를 사랑하는 것만큼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도로시 데이는 썼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인성 안에서 하느님을 경배한다. 그리스도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했다. 그분을 믿는 우리들은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살도록, ‘어둠 속에서 빛’이 되도록 초대받고 있다. 그러나 그 빛을 보기가 참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지하도에서, 공원에서 자는 모습을 볼 때 더욱 그렇다. 우리가 그분의 아들을 통해 주신 사랑의 선물에 투신하고 연대로 응답한다면, 어두움을 인간적이고 평화로 가득찬 그리고 빛이 나는 밤으로 바꿀 수 있으리라.


최충언 플라치도
외과의사.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단팥빵-어느 외과의사의 하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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